[가슴으로 읽는 한시] 박대이에게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박대이에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릴 것 있나?
술 즐기면 그게 바로 우리 편이지.
푸른 하늘에 달이 뜨면 언제나
백옥 술병 기울여 함께 마시네.
헛된 이름은 일소에 부쳐버리고
흠뻑 취해야 못난 축에 들지 않으리.
나를 찾는 친구가 나타나거든
도성 서쪽 술집에 가 물어보게나.
贈朴仲說大頤
何知賢不肖(하지현불초)
嗜酒卽吾徒(기주즉오도)
每對靑天月(매대청천월)
同傾白玉壺(동경백옥호)
浮名堪一笑(부명감일소)
熟醉未全愚(숙취미전우)
有客如相訪(유객여상방)
城西問酒壚(성서문주로)
17세기의 명사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의 시다. 거침없고 호방한 시풍을 자랑하던 동명에게는 허풍이 센 말을 많이 한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이 시는 그래도 한참 덜하다. 동명이 친구에게 시를 보냈다. 좋으니 나쁘니 잘났느니 못났느니 사람을 평가하여 줄 세우지 말자. 술을 즐기는 사람 모두가 다 친구다. 중천에 달이 아름답게 뜨면 바로 술병 기울여 함께 마시자.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말은 몽땅 구름 잡는 이야기다. 우리는 흠뻑 취하지 않는 놈을 못난이로 본다. 혹여 나를 찾는 이가 있거든 도성 서쪽 그 술집에 벌써 가 있노라고 말해주고, 자네도 어서 빨리 오게나. 이 시는 술을 마시러 오라는 전갈이다. 허풍이 없지 않으나 권력이나 명예나 부를 거들먹거리는 속물스러운 허세에 비하면 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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