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열두 고개

bindol 2021. 3. 13. 16:11

[가슴으로 읽는 한시] 열두 고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열두 고개

한 고개는 높고 한 고개는 낮고
앞에는 깊은 개울 뒤에는 얕은 개울.
한 고개는 짧고 한 고개는 길고
바위는 울퉁불퉁 소나무는 울울창창.
한 고개는 구불구불 한 고개는 쭉쭉 뻗고
말은 고꾸라지고 종은 헐떡헐떡
여섯 고개 넘고 나니 또 여섯 고개
아침에 곤양 떠나 사천 오니 해가 지네.
세상의 길과 길은 평탄한 때 한번 없나니
내 가던 길 이젠 쉬고 길 나서지 말자꾸나.


 

十二峙謠

一嶺高一嶺低(일령고일령저) 前深溪後淺溪(전심계후천계)
一嶺短一嶺長(일령단일령장) 石磊磊松蒼蒼(석뇌뢰송창창)
一嶺曲一嶺直(일령곡일령직) 駟馬蹶僕脅息(사마궐복협식)
六嶺度了又六嶺(육령도료우육령) 朝發昆明泗夕景(조발곤명사석경)
世間道途無時平(세간도도무시평) 吾行宜休不宜行(오행의휴불의행)

 

 

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1633~1709)가 환갑 전후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었다. 지금의 곤양면에서 사천시까지 가는 길에 열두 고개가 있었다. 한 고개 한 고개 넘을 때마다 풍경은 달라지고 고생은 새로워진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가다보니 여섯 고개 절반을 넘었건만 여섯 고개가 또 남았다. 열두 고개를 다 넘어 사천에 도착하니 날이 진다. 이 짓도 못하겠다며 한숨이 절로 난다. 그러나 실은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 열두 고개가 있다. 산천뿐 아니라 인생길 어디든 열두 고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