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늦게 일어나서

bindol 2021. 3. 13. 16:27

[가슴으로 읽는 한시] 늦게 일어나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늦게 일어나서

새 지저귀는 소리 빗물처럼 쏟아져
일어나 보니 창문이 제일 환하네.
여리던 나물은 봄 지나서 부드럽고
둥근 연잎은 수면과 나란하네.
밥상엔 새벽 시장서 나눠 온 고기가 올랐고
거처하는 방에선 높은 성곽이 마주 보이네.
얼굴과 머리 씻고선 역사책 읽기가 제격이라
빈 마루를 깨끗하게 청소하였네.

 

 

 

晏起遣興

鳥聲落如雨(조성낙여우)
人起戶先明(인기호선명)
細菜經春軟(세채경춘연)
圓荷與水平(원하여수평)
盤殽分早市(반효분조시)
居處面高城(거처면고성)
洗沐宜看史(세목의간사)
空堂灑掃淸(공당쇄소청)

 

 

 

삼명(三溟) 강준흠(姜浚欽·1768~1833)이 일기를 쓰듯이 생활을 읊었다. 빗물이 쏟아지듯이 울어대는 새들의 지저귐에 늦잠을 깼다. 창문이 훤하다. 어제까지는 일찍 일어나 어둠을 몰아내려고 호롱불을 켜고 세수하고 공부를 시작하면 그제야 새가 울어댔다. 오늘 아침 습관이 깨져 늦게 일어나니 온몸의 감각이 낯설다. 밖에 나가보니 텃밭의 나물은 부드럽고 수면 위에 넓게 퍼진 연잎이 눈에 들어온다. 밥상에 올라온 반찬도 새롭고, 늘 마주 보던 성곽도 오늘따라 또렷하게 보인다. 세수도 하고 머리를 감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다. 아무도 없는 마루까지 깨끗하게 청소하여 깨져버린 리듬을 되살려놓고 역사책을 읽어야겠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의 출발이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