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인제 가는 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인제 가는 길
이 쪽 저 쪽 남김없이
불에 타고 도끼로 찍어내고
봄빛이 화사할 산꼭대기
반도 넘게 휑하니 비어있네.
나이든 농부는
밭을 가느라 쉬지 않고
소를 모는 소리는
흰 구름 속에 가득하네.
麟蹄道中
火燒刀斫遍西東(화소도작편서동)
春色山頭一半空(춘색산두일반공)
年老田翁耕不輟(연로전옹경불철)
叱牛聲在碧雲中(질우성재벽운중)
중옹(中翁) 이광찬(李匡贊·1702~ 1766)이 봄이 한창 무르녹을 무렵 동해안으로 가려고 길을 나섰다. 큰 산이 이어진 인제 산길은 신록이 우거진 멋스러운 풍경을 나그네에게 선물하는 곳이건만 그것도 수십 년 전 낡은 이야기가 됐다. 길 양쪽 눈길이 가 닿는 곳마다 산꼭대기까지 휑하다. 화전민이 농사를 짓는다며 불을 놓고 도끼로 찍어내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영조시대판 개발의 현장이다. 봄철의 낭만을 찾으려는 시인이 되레 머쓱해진다. 개간의 덕을 조금 보는 늙은 농부를 탓할 수만은 없다. 그나마 산길의 정취를 전해주는 것은 산비탈 자갈밭에서 울려오는 '이랴, 이랴!' 소를 모는 소리다. 시인의 귓속에는 황폐해지는 산림을 걱정하는 숲의 신들의 한숨 소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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