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되게 추운 날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되게 추운 날
북악은 높이도 깎아지르고
남산은 소나무가 새까맣다.
솔개 지나가자 숲은 오싹하고
학이 울고 간 하늘은 새파랗다.
極寒
北岳高戌削(북악고술삭)
南山松黑色(남산송흑색)
隼過林木肅(준과임목숙)
鶴鳴昊天碧(학명호천벽)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 1805)이 어느 몹시도 추운 겨울날 서울의 풍경을 묘사했다. 제목은 '극한(極寒)'인데 춥다는 말 한마디 없다. 늘 보던 북악의 큰 바위가 오늘따라 더 날카롭게 솟아 보이고, 남산의 소나무는 파랗다 못해 검게 보인다. 그렇잖아도 오싹하는데 솔개가 지나가자 숲은 더 움츠러들어 적막하다. 그 적막한 창공을 가르며 학이 날다가 '꽥!' 우는 소리에 새파랗게 질린 하늘도 금이 갈 듯하다.
기온이 급강하한 서울의 산과 숲과 하늘과 새를 보여주었을 뿐인데 보는 이는 소름이 돋을 만큼 한기(寒氣)가 엄습해 온다. 원문의 시어(詩語)가 대부분 입을 다문 소리라서 너무 추워 입을 악문 듯한 상태를 표현했다. 시를 읊기만 해도 춥다. 되게 추워 아무도 나다니지 않는 적막한 겨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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