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골목길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골목길에서
밝은 해가 굴러서 서쪽으로 떨어지면
그때마다 나는 통곡하고 싶어진다.
그러려니 일상으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
그냥 다만 저녁밥을 내오라 재촉한다.
衚衕絶句
白日轣轆西墜(백일역록서추)
此時吾每欲哭(차시오매욕곡)
世人看做常事(세인간주상사)
只管催呼夕食(지관최호석식)
영조 말엽의 천재 시인이자 역관인 이언진(李彦瑱·1740~1766)의 시다. 세상을 밝히던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면 시인은 통곡하고 싶어진다. 모두들 배고프다며 밥을 내오라 재촉하는 시간이다. 해가 져서 저녁밥을 찾는 그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시인은 왜 타박하는 걸까? 시인 자신도 그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텐데 말이다.
시인이 해가 질 때면 통곡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저 떨어지는 해가 인생의 끝나는 순간을 날마다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하루하루를 일상의 관성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간의 귀함을, 그 상실의 아픔을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시인은 민감하게 느낀다. 일몰은 시인에게 조금씩 몰락하는 인생의 슬픔을 알려준다. 오늘도 해가 지니 오늘 하루의 이 귀한 시간이 사라지는 아픔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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