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시골 마을 꽃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시골 마을 꽃
시골 마을 꽃은 오두막집을 환히 밝히고
대로의 버들은 높다란 담장을 덮었군.
병이 들어 문 닫고 지냈거니
잠깐 노니는 것이 어찌 미친 짓이랴?
나무하는 아이는 피지도 않은 꽃가지를 머리에 꽂았고
나물 캐는 소녀는 막 자라는 순을 캐는구나.
시냇가에 쓸쓸히 앉았노라니
그대 다가와 술 한잔을 권하네.
村花村花明小屋(촌화명소옥)
官柳覆高墻(관류복고장)廢門緣多病(폐문연다병)
偸閑豈是狂(투한기시광)樵童簪未發(초동잠미발)
菜女折方長(채녀절방장)溪上悄然坐(계상초연좌)
君來勸一觴(군래권일상)
이광현(李匡顯, 1707~1776)의 시다. 30년을 부산에서 유배 생활하며 그 고독함을 시로 달랬다. 길고긴 겨울 내내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몸이 아픈 탓이라고 해두자. 봄도 되고 해서 모처럼 바람을 쐬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여린 꽃이 피어 촌티를 벗은 오두막 초가집과 버들가지 늘어진 큰 집 담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꽃가지를 머리에 꽂은 아이들과 나물 캐는 소녀들이 앞을 지나간다. 멋지고 활기차다. 시냇가에 쓸쓸히 앉아있었더니 어디선가 지인이 나타나 "술 한잔 하시렵니까?" 물어온다. 그를 따라 일어선다. 못 마시는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다.
'가슴으로 읽는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엽시 (0) | 2021.03.14 |
---|---|
[가슴으로 읽는 한시] 표암댁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되게 추운 날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골목길에서 (0) | 2021.03.14 |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 해를 보내며 (0) | 202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