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엽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낙엽시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
환상의 변화를 어쩜 저리 서두를까?
발갛고 노란 잎을 점점이 날리는 바람
붉은 꽃과 흰 버들솜에 불어왔었네.
봄과 가을 번갈아 바뀌어도
태양은 양쪽 어디에도 머물지 않네.
공(空)과 색(色)이 뒤집히는 동안
성큼성큼 세월은 흘러가누나.
落葉詩天地大染局(천지대염국)
幻化何太遽(환화하태거)
丹黃點飄蘀(단황점표탁)
紅素吹花絮(홍소취화서)
春秋迭代謝(춘추질대사)
光景兩無處(광경양무처)
空色顚倒間(공색전도간)
冉冉流年去(염염유년거)
1825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 ~1845)가 낙엽을 읊은 시 8편을 지었다. 가을이 되면 천지는 거대한 염색 가게로 바뀐다. 이 염색 가게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환상적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 만큼 빠르다. 온갖 빛깔 낙엽을 한 점 한 점 허공에 날려버리는 바람은 지난 봄철 현란한 꽃을 피웠던 바로 그 바람이다. 그처럼 봄과 가을이 번갈아들며 염색 가게를 차지해도 태양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자취도 주소도 남기지 않는다. 공과 색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염색 가게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벌써 염색 가게가 문을 닫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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