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

bindol 2021. 3. 14. 05:38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

 

부잣집은 딸을 낳아 온갖 근심 모여들어도
가난한 집은 아들 낳아 만사가 만족일세.
거긴 날마다 천전을 써 힘겹게 사위 대접하지만
나야 경전 한 가지를 아들에게 읽히면 그만이지.
나는 지금 아들만 낳고 다행히 딸은 없는데
큰놈은 글을 알고 작은놈은 인사를 잘하네.
뉘 집에서 딸을 길러 효부를 만들었을까?
아들을 보내 거만한 사위 만들어야지.
집 지키고 취한 이를 부축할 일 걱정 없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낙을 훗날에 누리련다.

 

 

井男生日戱題富家生女百憂集(부가생녀백우집)


貧家生男萬事足(빈가생남만사족)
日費千錢供婿難(일비천전공서난)
只將一經敎子讀(지장일경교자독)
我今生男幸無女(아금생남행무녀)
大者能書少能揖(대자능서소능읍)
誰家養女作孝婦(수가양녀작효부)
我欲送男爲慢客(아욕송남위만객)
守家扶醉兩無憂(수가부취양무우)
歸享他年浣花樂(귀향타년완화락)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 ~1618)이 둘째 아들 생일날 엉뚱한 시를 썼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저놈을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되는 순간, 백사 특유의 낙천주의에 두둑한 배짱이 가만있지를 못한다. 아무 걱정 없다. 지금 어느 부잣집에서 딸을 고이 기르고 있을 테니 그 집 데릴사위로 보내자. 사돈집은 내 아들 모시느라 고생 좀 하겠다. 백일몽이라도 꿔야 자식 키울 걱정의 무게가 덜어진다. 백사는 시로도 웃음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