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bindol 2021. 3. 14. 05:39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서울 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촌뜨기가 우연히 장안을 들어오면서
썩은 새끼줄로 낡은 안장을 칭칭 동여맸지.
고관을 겁내 아이 종은 허겁지겁 피하고
큰길에 들어서자 말은 한사코 뒷걸음치네.
꾀죄죄한 옷차림에 먼지를 다 뒤집어썼고
풀만 먹어 앙상해진 데다 낯짝까지 두꺼워졌겠지.
반기던 벗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서
똑바로 마주쳐도 교생이라 잘못 보네.

 

 

戲贈周卿丈田夫偶爾入長安
(전부우이입장안)
朽索累累縛破鞍
(후삭누루박파안)
僮畏達官忙引避
(동외달관망인피)
馬臨周道苦盤桓
(마림주도고반환)
荷衣冷落皆蒙垢
(하의냉락개몽구)
菜色憔枯更厚顔
(채색초고갱후안)
靑眼故人多不識
(청안고인다불식)
相逢枉作校生看
(상봉왕작교생간)

조선 숙종조의 문신 조지겸(趙持謙·1639~1685)이 친구 최후상(崔後尙)에게 지어 주었다. 벼슬에서 쫓겨나 시골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하려는 순간 친구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 서운함에 머뭇거리는 그에게 친구는 한참 만에야 "행색이 너무 초라해 못 알아봤다"고 하면서 술을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장난삼아 시를 써 주고 흔쾌하게 웃고 헤어졌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기분이 완전히 가시기는 어려운가 보다. 인간사의 씁쓸한 맛을 본 느낌이 호쾌한 웃음기에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