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홀로 길을 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4.02.14 05:38
홀로 길을 가다
새 한 마리 하늘가로 사라졌으니
높은 자취를 어디 가서 찾을까?
밤길에서는 조각달을 따라서 가고
아침에 일어나선 외로운 산을 마주보네.
가림막이 있으면 간담도 멀리 떨어진 것이나
사심이 없으면 옛날도 현재가 되네.
지팡이 멈추고 때때로 홀로 앉노니
흐르는 물이 바로 내 친구일세.
獨行一鳥天邊去(일조천변거)
高蹤何處尋(고종하처심)
夜行隨片月(야행수편월)
朝夢對孤岑(조몽대고잠)
有膜肝猶越(유막간유월)
無私古亦今(무사고역금)
停笻時獨坐(정공시독좌)
流水是知音(유수시지음)-송익필(宋翼弼·1534~1599)
조선 중기의 유학자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시다. 그는 고독한 사물을 즐겨 읊은 시인이다. 길을 걸을 때 그의 시선은 곧잘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에게 머문다. 밤길에서는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조각달을 찾고, 잠에서 깬 아침나절에는 외롭게 서 있는 산을 바라본다. 그 자신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왜 그렇게 자주 일부러 고독과 마주치는 것일까? 고독한 순간에는 사물과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고, 사사로운 욕망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은 그냥 혼자가 아니다. 세상이나 사물에 다가가 소통하고, 먼 옛날과도 대화를 나누게 한다. 길을 걸으며 고독한 것들과 대화하는 고독한 시간은 세상을 관조하고 인생을 음미하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흐르는 물이 나와 친구 하자며 콸콸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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