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지팡이 짚고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지팡이 짚고서
지팡이 짚고서 사립문 나서니
상쾌한 기분이 끝없이 샘솟네.
사방의 산들은 창을 세워 호위하고
한 줄기 시내는 구슬처럼 흘러가네.
솔숲 길에 학이 서서 날은 저물고
바위틈에 구름 피어 서늘해지네.
까마득히 떠오르네 십 년 세월 꿈이여!
그 속에서 내 얼마나 허둥댔던가!
倚杖(의장)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
悠然發興長(유연발흥장)
四山疑列戟(사산의열극)
一水聽鳴璫(일수청명당)
鶴立松丫暝(학립송아명)
雲生石竇凉(운생석두량)
遙憐十年夢(요련십년몽)
款款此中忙(관관차중망)-이숭인(1349~1392)
송윤혜
고려말의 시인이자 학자인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9~1392)의 시다. 날이 저물어 가는 저녁은 지팡이를 찾아 짚고 산책하러 나가기 좋은 시간이다. 걸음걸음마다 나를 맞이하는 것은 바쁜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하는 풍경이다. 사방의 산과 졸졸 흐르는 시내가 나를 반긴다. 학은 솔숲의 갈림길에 선 채로 어둠에 묻혀 가고, 저녁 구름은 바위틈에서 피어올라 몸을 오싹하게 한다. 저 정겨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남들은 여유롭다고 하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십 년 세월 동안 뭔가를 이뤄보겠노라고 허둥댔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십 년 세월의 꿈이 있었다. 지팡이에 몸을 싣고서 바라보니 세상사 참으로 허망하다. 도은은 그 허망한 꿈을 이루고자 다시 세상을 나갔고, 정도전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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