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발을 씻고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발을 씻고서
문 앞에는 우물 있어
동이 가득 시원한 물 길어오고
부엌에는 작은 대야 있어
그 물 덜어 받쳐왔네.
마루 앞에 앉아
세상에서 묻은 때를 말끔하게 씻고 나니
이제부터 숲 속에서
베개 높이고 잠을 자겠네.
洗足詩(세족시)
汲取門前井水寒(급취문전정수한)
捧來廚下小龍盤(봉래주하소룡반)
臨軒快滌紅塵跡(임헌쾌척홍진적)
始得山林一枕安(시득산림일침안)
―이원휴(李元休·1696~1724)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조카이자 유명한 서예가 옥동(玉洞) 이서(李 �余�)의 아들인 금화자(金華子) 이원휴의 시다.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와서 발을 씻었다. 문 앞에 있는 우물에서 차가운 물을 길어와 마루 앞에 앉아 발을 씻고 나니 문밖의 세상에서 묻혀온 갖은 때가 다 씻겨나간다. 그제야 비로소 베개를 한껏 높이고 편안한 잠을 마음껏 청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문밖을 나가 크고 작은 일을 하고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그가 누구든 세상에서 묻혀온 때가 옷과 몸과 마음에 묻어 있다. 차가운 물에 발을 씻는다면 그 모든 때가 말끔히 씻겨나가고, 그렇게 하고 나면 베개 위에 머리를 누이고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을 듯하다. 누군들 그런 저녁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 않을까? 포근하고 상쾌한 안식이 마음에 스미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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