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벙거짓골에 소고기를 굽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벙거짓골에 소고기를 굽다
고기 썰어 벙거짓골에 늘어놓고
몇 사람씩 화로를 끼고 앉아서
자글자글 구워서 대강 뒤집다가
젓가락을 뻗어보니 고기 벌써 없어졌다.
온 나라에 유행하는 새 요리법은
근자에 여진에서 들어온 풍속.
의관을 갖추고서 달게 먹지만
군자라면 부엌을 멀리해야지.
―신광하(申光河·1729~1796)
詠氈鐵煮肉(영전철자육)
截肉排氈鐵(절육배전철)
分曹擁火爐(분조옹화로)
煎膏略回轉(전고약회전)
放筯已虛無(방저이허무)
擧國仍成俗(거국잉성속)
新方近出胡(신방근출호)
衣冠甘餔餟(의관감포체)
君子遠庖廚(군자원포주)
조선 정조 시대의 시인 진택(震澤) 신광하가 두만강 일대를 탐방하던 중에 지었다. 화로 위에 전골을 지지는 철판(벙거짓골)을 놓고 몇이서 둘러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는 요리는 추운 겨울에 벌여야 제멋이었다. 고기를 먹은 뒤에는 꼭 야채를 곁들여 먹어 기름기를 달랬다. 18세기 중후반에는 이런 요리를 먹는 모임을 전철회(氈鐵會)니 난로회(煖爐會)니 부르며 즐겼다.
그야말로 새롭게 등장한 최신식 요리법이자 문화였다. 뜻하지 않게 전철회에 참석한 시인은 낯설지만 맛 좋은 음식에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군자가 직접 요리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는 다 먹고 나서야 떠올랐다. 그것이 훨씬 인간적이다. 그때는 먹기 힘든 최신의 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일상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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