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네 가지 기쁜 일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네 가지 기쁜 일 共人賦四喜詩(공인부사희시)
가난한 집 급한 빚을 이제 막 해결하고
장맛비로 지붕 새는데 날이 문득 개어오네.
파도에 휩쓸린 배가 언덕에 정박하고
깊은 산속 길 잃었는데 행인을 만나네.
책 읽다가 난해한 것을 별안간 깨우치고
시구 찾다 좋은 소재 홀연히 떠오르네.
용한 의원 처방하자 묵은 병이 사라지고
봄날씨가 추위를 몰아내니 만물이 소생하네.
窶家急債券初了(구가급채권초료)
破屋長霖天忽晴(파옥장림천홀청)
駭浪飄舟依岸泊(해랑표주의안박)
深山失路遇人行(심산실로우인행)
讀書斗覺微辭透(독서두각미사투)
覓句忽驚好料生(멱구홀경호료생)
良醫對症沉痾去(양의대증침아거)
和煦破寒品物亨(화후파한품물형)
―윤기(尹愭·1741∼1826)
우리 18세기의 시인 무명자(無名子) 윤기의 시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나이 쉰을 넘기도록 공부만 하다가 겨우 문과에 급제했다. 무던 애를 써서 만년에 거둔 성과였다.
그가 겉으로는 이룬 것이 거의 없던 서른 나이에 이 시를 지었다. 상상은 현실을 드러낸다. 실제로는 지붕 새는 집에서 빚더미에 앉아 거센 파도에 휩쓸려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리라. 짝수 구(句)의 끝 글자인 '맑게 개고[晴]' '다니고[行]' '살아나고[生]' '형통하는[亨]' 결말을 꿈꾸더니 시인은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살아가기가 어려울 때 행복한 상상이라도 없다면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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