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어린 아들

bindol 2021. 3. 15. 04:44

[가슴으로 읽는 한시] 어린 아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어린 아들

얼굴도 잘 생긴 어린 내 아들
흐리거나 맑거나 걱정이 없네.
풀밭이 따스하면 송아지처럼 내빼고
과일이 익으면 원숭이인 양 매달리네.
언덕배기 지붕에서 쑥대 화살 날리고
시냇가 웅덩이에 풀잎배를 띄우네.
어지럽게 세상에 매인 자들아
어떻게 너희들과 함께 놀겠나!

 

稚子(치자)

稚子美顔色(치자미안색)
陰晴了不憂(음청료불우)
草暄奔似犢(초훤분사독)
果熟挂如猴(과숙괘여후)
岸屋流蓬矢(안옥류봉시)
溪幼汎芥舟(계요범개주)
紛紛維世者(분분유세자)
堪與爾同游(감여이동유)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이 젊은 시절에 지었다. 그가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며 한창 바쁘게 지내던 시절, 다산의 어린 아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린 아들은 날씨가 맑거나 흐리거나 개의치 않고 뛰어놀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아이들의 천진함이다. 다산의 아들만이 아니라 옛날 어린이들이면 누구나 그랬음직한 풍경이다. 얼굴이 잘 생겼다며 귀여워 못견뎌하는 마음까지 드러낸 것을 보면 다산도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아버지의 하나다. 아들만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문밖 세상을 오가는 사람들은 딴판이다. 아들의 천진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도저히 함께 어울릴 마음이 나질 않는다. 그게 어린 아들이고, 험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