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소망(所望)

bindol 2021. 3. 15. 04:45

[가슴으로 읽는 한시] 소망(所望)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소망(所望)

내 소망은 많지도 크지도 않아
자식이나 키우며 일없이 살고파.
산 한 곳을 장만하여 나무를 심고
창고에는 벼 백 섬을 거둬들이지.
공부 시켜 선대 가업 이어가고
닭을 삶고 돼지 잡아 이웃 부르네.
유유히 한 백년을 지내는 동안
태평시대 백성으로 보내고 싶네.

 

所望不豊侈(소망불풍치)
閑居養子孫(한거양자손)
一區園種樹(일구원종수)
百斛稻收囷(백곡도수균)
文史傳先業(문사전선업)
鷄豚會比隣(계돈회비린)
悠悠百歲內(유유백세내)
願作太平民(원작태평민)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를 옹호하다 비명에 죽은 우념재(雨念齋) 이봉환의 작품이다. 문장으로 명성도 제법 누렸고 낮은 직책도 얻은 적이 있으나 늘 미래가 불안했던 그였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으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는 스스로에게 암시하듯 인생의 소망을 시로 읊었다. 작은 동산을 마련하여 나무를 심고 벼도 백 섬 수확하여 살림살이를 튼튼히 한 다음에는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이웃들과 어울려 지낸다. 한 평생 특별한 사건 없이 태평시대의 평범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랬다. 옛사람들이 꿈꾸었던 청복(淸福)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그의 소망은 오늘날 중산층 시민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편안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사치에 불과한 꿈임을 그의 시와 삶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