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비꼴 일이 있다
소리개가 병아리를 나꿔채
동산의 높은 나무가지에 앉네.
가련하다 하늘 높이 날아야 할 새가
배고프니 안 하는 짓이 없구나.
불쌍하다 세상의 선비된 자들
앞으로는 무얼 할지 알기 어렵네.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야 할 뿐
공연히 목소리만 높이지 말라!
有諷(유풍)
鳶攫雞兒去(연확계아거)
東山高樹枝(동산고수지)
可憐九霄翼(가련구소익)
飢來無不爲(기래무불위)
矜矜世上士(긍긍세상사)
前頭難預期(전두난예기)
惟自善終始(유자선종시)
莫謾大其辭(막만대기사)
조선시대 숙종 임금의 외사촌뻘인 춘주(春洲) 김도수의 시다. 그는 왕가의 외척(外戚)이기는 했으나 불우하게 지내며 일그러진 세태를 풍자한 시를 즐겨 지었다. 병아리를 채가는 소리개는 고고하게 살아가야 할 지식인과 관료다. 하늘이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건만 배만 고프면 하늘을 버리고 지상으로 낙하한다. 욕구를 채우려고 안 하는 짓이 없다.
그런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범상한 사람들이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고상한 척 정의로운 척 큰소리를 친 그들의 과거를 믿어선 안 된다. 그랬다가는 병아리만 당한다. 지금도 지상으로 낙하하는 소리개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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