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1] 세금 앞에 예외 없나
입력 2021.03.18 03:00 | 수정 2021.03.18 03:00
한시적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미국은행(1816~1836).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 은행은 350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세워져 18개의 지점을 거느린, 미국 최대 기업이었다.
12월 결산법인의 법인세 납부 마감이 다가온다. 많은 기업이 3월 말까지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학교와 종교단체는 예외다. 비영리단체는 원칙적으로 법인세를 안 낸다.
영리와 비영리의 기준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변호사와 세무사들이 돈을 버는 이유다. 중앙은행은 영리기업인가, 아닌가? 미국에서는 이 간단한 질문에 대법관들까지 끼어들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공화파는 중앙은행을 영리기업이라고 보았다. 이자 수취는 전형적인 영리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 연방파는 중앙은행이 공익을 위해 꼭 필요한 비영리단체라고 생각했다. 양 진영은 입씨름 끝에 일단 중앙은행을 세우고 20년만 실험해보기로 타협했다.
정권이 바뀌자 입장도 바뀌었다. 연방파인 메릴랜드 주지사가 “중앙은행은 주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영리기업”이라며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여당인 공화파가 발끈했다. 연방정부가 세운 기관에 주정부가 과세하는 것은 ‘대통령 힘 빼기’이므로 소송으로 대응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이 최초로 충돌한 그 역사적 재판에서 대법관들은 “중앙은행에 대한 주정부의 과세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주권은 개별 주정부가 아닌 국민 전체에게 있다는 이유였다.
세제 면에서 중앙은행을 다루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위스와 일본의 중앙은행은 민간 주주가 있고, 그 주식이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도 된다. 그런데 스위스중앙은행은 법인세를 안 내고, 일본은행은 낸다. 독일과 프랑스중앙은행은 둘 다 정부가 소유하는데, 독일은 법인세를 안 내고, 프랑스는 낸다. 한국은행은 법인세를 안 내다가 1982년부터 낸다. “세금 앞에 예외 없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엄명 때문이었다.
40년 전 ‘최고 존엄’의 한마디에 영리기업이 되어버린 한은은 요즘 서류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다. 학교나 종교단체가 부러울 따름이다. 한은의 이익금은 세금이 없더라도 어차피 국고로 간다는 걸 국세청은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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