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입력 2021.04.01 03:00 | 수정 2021.04.01 03:00
40년 전 영국 정부는 인기가 형편없었다. 고질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퇴치와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대처 총리가 초긴축정책을 편 탓이다. 수백 명의 경제학자들이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 군사 정권의 인기는 더 형편없었다. 급기야 군부 안에서도 분열이 생겨 부하들이 대통령을 축출했다. 새 대통령은 국면 전환을 위해서 느닷없이 영국을 도발했다. 코앞의 영국 섬을 점거한 뒤 자기 땅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지구 반대편의 쓸모없는 땅을 위해 영국이 파병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예상이 빗나갔다. 대처 총리는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급파했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이었다. 75일 뒤 아르헨티나가 항복했다. 국제적 망신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난까지 가중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군사 정부가 붕괴되었다.
영국의 피해도 컸다. 재정 적자 확대 외에 상당수 장병과 전투함을 잃었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었다. 해군 장교였던 앤드루 왕자는 자신의 헬기로 적군의 미사일을 유도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징집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난 아르헨티나 지도층 자식들과 확연히 달랐다. 목숨을 걸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왕자의 인기와 함께 왕실과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자긍심도 치솟았다. 내각의 재정 적자 타령을 뚫고 영토 수호 의지를 관철시킨 대처 총리는 최대 수혜자였다. 그동안의 반대 여론은 사라지고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10년 장기 집권의 길이 열렸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룻밤의 관계를 맺는 사람과는 돈거래를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과는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진짜 소중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영토 수호 의지가 그러하다.
내일(2일)은, 작았지만 큰 교훈을 남긴 포클랜드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대처는 31년 뒤 4월 8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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