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12] 개혁이 늦으면 비극을 낳는다

bindol 2021. 3. 25. 04:26

[차현진의 돈과 세상] [12] 개혁이 늦으면 비극을 낳는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cha-hyunjin 기자페이지 - 조선일보

 

www.chosun.com

입력 2021.03.25 03:00 | 수정 2021.03.25 03:00

 

 

 

영국 노예제 반대운동 모임의 공식 메달(1795). 손목과 발목에 족쇄와 쇠사슬을 찬 흑인 아래쪽에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닌가요?(Am I not a man and a brother?)"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위키피디아

“노예는 사람인가, 재산인가?”

독립전쟁을 할 때 미국인들은 그 질문을 애써 피했다. 그러나 헌법을 만들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노예가 사람이라면, 하원 구성에서 북부가 불리하다. 재산이라면, 남부 노예 주인들이 세금 폭탄을 맞는다. 논란 끝에 노예는 3/5만 사람으로 보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헌법에 “기타 사람(all other persons) 3/5”이라는 이상한 문구가 실렸다.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들이 가장 많이 실어 나른 상품은 노예였다.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21세에 돈으로 하원의원직을 산, 전형적인 금수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찬송가를 듣고 회개했다. 술과 여자에 전 방탕한 생활을 접고, 일생을 노예해방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의회에서 아무리 노예해방을 외쳐도 반응이 없었다. 노예가 없으면, 영국 경제가 멈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1806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영국 경제가 휘청거렸다. 역발상이 필요했다. 일단 노예무역을 금지한 뒤 노예 밀수 단속을 명분으로 영국 해군이 대서양을 오가는 모든 상선을 수색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륙봉쇄령은 무력화된다. 피트 총리가 윌버포스의 제안에 무릎을 치면서 노예무역금지법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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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노예 해방 운동가이며 영국의 대표적 종교개혁가였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초상. Portrait of William Wilberforce (1759-1833) Aged 29 (oil on canvas) by Rising, John (1753-1817). oil on canvas, 220x130 © Wilberforce House, Hull City Museums and Art Galleries, UK English, out of copyright

그러나 기존의 노예를 놔두고 노예무역만 금지하는 것은 위선이다. 윌버포스는 남은 인생을 노예해방을 향해 또 뛰었다. 마침내 1833년 7월 노예폐지법이 제정되었다. 며칠 뒤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연로한 윌버포스가 감사한 표정으로 임종했다.

미국은 영국을 좇아 1808년 노예무역금지법을 만들었지만, 노예제도 폐지에는 시간이 걸렸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은 1862년에 이르러서다. 유럽이 일찌감치 포기한 노예제도를 너무 오래 붙잡는 바람에 내란을 겪던 때였다. 기득권에 막혀 개혁이 늦어진 데서 생긴 비극이었다. 지금의 화석연료 사용과 환경 파괴에 주는 교훈이다.

1807년 오늘 영국에서 노예무역금지법이 제정되었다. 노예해방의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