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낱말의 의미를 살피면 형이상학적 무언가가 형이하학적 실체로 바뀐다.
얼이란 무엇일까? 얼굴은 얼꼴(shape of spirit)이다. 사람 마음 속 정신이 밖의 형태로 드러난 꼴이 얼굴이니 얼은 인간의 정신이다. 겨레의 얼이란 민족의 정신이다. 그런데 얼의 뜻에 대해 대단히 충격적인 설이 있다. 얼은 정액(精液)이라는 주장이다. 얼이 고상한 정신이 아니라 배꼽 아래에서 분비되는 정액이라니? 불경스럽다. 황당하다. 기분나쁘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내용을 찬찬히 살피면 그럴 듯하다. 다음 낱말들에서 얼을 생명의 시작인 정액으로 하면 우리가 쓰는 낱말의 뿌리가 보인다. 얼을 누다←얼누다(성교하다), 얼을 누는 이←얼눈이←어른, 아직 얼인 이←어린이, 얼이 없다←어렵다, 얼이 간 이←얼간이, 얼을 싸는 일←얼씨구(얼쑤), 얼이 빠지다←얼 빠지다, 얼인 아기를 만지다←어루만지다, 얼이 섞다←어리석다, 자위행위로 얼을 싼 사내의 손에 묻은 액체를 보고 얼물인지 콧물인지 놀리는←얼라리 꼴라리, 얼의 액체가 묻은 흔적←얼룩덜룩, 얼이 수그러들다←어리숙하다 등등. 이처럼 얼은 원래 정액이었으며 나중에 정신이 되었다는 설이다.
아울러 얼은 알로도 되었다. 얼의 정액설은 생식행위가 중요했을 원시시대에 기원한다. 5000~9000여 년 전 한민족에게 내려진 천부인(○ㅁ△)에 이어 열여섯 글자(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열)인 천부경(神誌鹿圖文天符經)으로부터 유래한다.
얼은 영혼(靈魂)이나 혼백(魂魄)에 가까운 형이상학적인 넋과 달리 지극히 형이하학적이다. 이 불편한 주장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무조건 거부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여유있게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다. 낱말에서 오는 우리 생각의 다원화를 위하여!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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