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낱말을 내게 한다면 화가 난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낫이 ㄱ(기역)자로 생겼는데 모르니 글자를 한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一字無識)이라는 뜻이다. 까막눈이라고도 하는데 새끼를 낳으려고 눈이 먼 어미새의 눈이 까막눈이다. 까막눈이 된 어미에게 다 자란 새끼는 먹이를 물어다 준단다. 그래서 까막눈은 효도를 실천하는 새의 아름다운 모습이지 무식의 뜻은 아니다. 무식하다는 뜻으로 쑥맥이 있다. 콩(菽)과 보리(麥)도 구별 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왔다. 콩과 보리도 모르니 얼마나 무식한가?
일본어 바카야로(馬鹿野朗)도 비슷하다. 사슴(鹿)과 말(馬)도 구분 못하는 무식한 녀석(野朗)이다. 조고가 진시왕의 아들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상대방에게 바카야로라고 하면 일본에서 가장 큰 욕이다. 상대편 엄마까지 동원시키거나 신체특정 부위를 들먹이거나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죽일 것인지 정말로 우악스럽고 겁나게 모욕주는 우리네 거친 욕설과 비교하면 순진하다. 바카야로에 해당하는 우리말로 꺼벙이는 꿩의 새끼로 모자르고 간이 덜된 얼간이같다. 멍충이는 멍텅구리 물고기로 동작이 느린 못난이다. 바보란 원래 밥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물보, 잠을 많이 자는 잠보, 느릿하게 행동하는 느림보처럼 바보는 할 일 없이 밥만 많이 먹는 사람이다.
뻔한 식물을 구별 못하는 쑥맥, 뻔한 동물을 구별 못하는 바카야로가 되면 곤란하다. 그러나 새끼새 꺼벙이를 귀엽게 여기고, 물고기 멍충이를 가엽게 여기면 어떨까? 가끔 물보, 잠보, 느림보, 바보가 되는 것도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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