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9> 당황과 황당 : 느닷, 터무니, 뜬금, 어이없다

bindol 2021. 4. 20. 05:00

한쪽은 한자, 다른 한쪽은 우리말인데 우리말이 더 재미있고 다채롭다.

먹던 빵에서 한 마리 바퀴벌레가 나오면 당황하고, 반 마리 바퀴벌레가 나오면 황당하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반 쪽이라면 바퀴벌레의 누런 체액이 먹던 빵에 흘렀으니 더 놀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황과 황당은 글자 순서만 거꾸로가 아니라 뜻이 다르다. 당황(唐慌)은 깜짝 놀라 정신없이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원인의 기미를 뜻하는 느닷(indication of cause) 없이 갑자기 일이 생기면 깜짝 놀라니 당황한다.

황당(荒唐)은 진실과 반대말로 실속없이 근거없이 큰소리치는 허풍이다. 집 지어진 터의 무늬가 없다는 터무니없음도 실속 근거없는 허풍이다. 하늘에 뜬 구름인 뜬금 어원설보다 시장에서 띄운 물건값인 뜬금 어원설이 더 그럴듯한 뜬금없음은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이없음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어찌 손 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녹두를 맷돌에 갈려는데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가 없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럴 때 어이없다는 말이 나왔다. 어이란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의 준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니 느닷없다, 터무니없다, 뜬금없다, 어이없다는 우리말들이 비슷하게 쓰여도 뜻이 다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뜻들이 큰 맥락으로 보면 비슷하기도 하다.

인류의 발전은 늘 느닷없고 터무니없고 뜬금없고 어이없이 여겨지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여기며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며 역사를 진전시켰다. 설령 살면서 느닷, 터무니, 뜬금, 어이없는 일이 생기더라도 황당해 하며 당황하기보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하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