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기획(企劃)과 계획(計劃)

bindol 2021. 4. 21. 04:59

'국제신문e세상'에 이어 '박기철 교수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을 매주 화·목요일 연재합니다. 낱말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들여다 보게 해줄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어릴 때 방학이 되면 설레는 맘으로 시간표를 짰던 경험이 있다. 이와 같은 방학시간표는 계획일까? 기획일까?

계획의 '계'란 열(十)과 같은 수를 세서 말한다(言)는 뜻이다. 그래서 셀 계(計)이다. 방학이나 시험이 다가올 때 방학시간표나 공부일정표를 짜는 일은 하루 24시간이나 한 달 30일의 날 수를 세어서 계획을 짜는 일이다. 결국 계획은 타임 테이블을 마련하는 일이다. 반면에 기획의 '기'란 사람(人)이 가다가 정지하고 선다(止)는 뜻이다. 그래서 꾀할 기(企)이다. 그냥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남들이 하는 대로 한다면 굳이 가다가 설 필요가 없다. 조금 더 높이 위로 발돋음 하려고 할 때도 잠깐 가다가 서야 한다. 이처럼 기란 지금 놓여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가만히 달리 생각하며 뭔가 다른 일을 새롭게 꾀하려는 일이다. 이러한 꾀함이 있은 후에 칼(刀)질하듯 그림(畵)을 제대로 그리는 흥미있는 칼그림의 획(劃)을 할 수 있다.

계획과 기획의 낱말 차이가 이렇게 확실하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분명해진다. 기획부터 해서 뭔가 지금까지 하던 방식이나 남들이 하는 방법과 다른 싱싱한 아이디어(big idea)를 얻은 후에 이에 따른 시간표나 일정표(time table)를 짜야 마땅하다. 즉 기획을 한 다음에 계획을 해야 한다. 기획하는 일은 겁나는 일이다. 때로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나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과 비교해 잘못 되었을 경우에 올 수 있는 차가운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새롭게 하는 일이기에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도 기획이 필요하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