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통섭 : 한자로 어떻게 쓸까

bindol 2021. 4. 21. 04:56

통섭이란 낱말은 10년도 안되어 유행을 넘어 이제 일반 개념어로 자리잡았다. 통섭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주인공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consilience'라는 스승의 책을 번역하면서 고민 끝에 '統攝'이라고 했단다. 생물학자 수준에서는 잘한 번역이지만 뭔가 꺼림직하다. 왠 딴지걸기일까?

통섭(統攝)의 한자 뜻은 아래의 여러 개를 묶어 하나로 위에서 거느리고(統) 여러 귀들(耳, 耳, 耳)을 모아(聚) 한 손으로(手) 다스리는(攝) 것이 된다. 반면에 통섭(通涉, interdiscipline)은 여러 개가 나란히 가로질러(inter, cross, trans) 통하면서(通) 이쪽저쪽 서로 왔다갔다 건너기도(涉) 하는 것이다. 統攝이 수직적이라면, 通涉은 수평적이다. 자연도태를 통한 진화가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생물학 세계는 전자가 지배한다. 전자의 관점에서 맨 위의 1등은 찬양과 존경의 대상이 되며, 밑의 나머지들은 떨거지가 된다. 오로지 1등만 기억되는 살벌한 세상이다. 통섭의 생물학자는 TV에서 통섭에 대해 강의하며 김연아 선수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며 꾸벅 머리를 숙였다. 김연아 밑의 선수들은 어찌 여기는 것일까?

물론 인간도 동물인 생물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위한 생물학 법칙이 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오히려 짐승 세계보다 훨씬 탐욕스럽기에 보다 이상적인 지향점이 있어야 그나마 살 만해진다. 수직적 통섭(統攝)을 통한 최고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간에 다른 점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통하며 건너는 통섭(通涉)의 과정이다. 하나로 수렴되는 객관적 정답을 아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주관적 해답을 찾아 가는 길이다. 이는 統攝이 아니라 通涉을 통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