螂丸集

[양해원의 말글 탐험] [141] 말의 부메랑

bindol 2021. 5. 7. 05:38

[양해원의 말글 탐험] [141] 말의 부메랑

양해원 글지기 대표

 

 

좀스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나중에 살 집터를 두고 시비가 벌어지자 대통령이 그랬다. 알고 보니 달리 민망한 일이 벌써 있었는데…. 비난 쪽지 뿌린 백성을 고소했다는 것이다. 북한 아무개가 그악스러운 욕설을 거듭 내뱉을 때도 태연했건만. 뒤늦게 알려져 시끄러워지니 2년 만에 없던 일로 하게 했단다. ‘좀스럽고 민망하다’는 말은 부메랑이 아니었을까.

부메랑, 무엇을 꾀한 사람이 되레 좋지 않은 일을 당할 때 쓰는 표현이다. 놀이나 사냥 표적을 맞히지 못하면 돌아오는 도구 특성을 빗댔다. 영어 발음기호 [buːməræŋ]에서 보듯 ‘부머랭’으로 써야겠지만 ‘부메랑’이 번듯이 자리 잡았다. 외래어·외국어 표기에 꼼꼼하지 못했던 시절 입버릇이 규범 표기로 굳어버린 탓이다.

 

일반명사처럼 쓰는 ‘바바리(Burberry)’도 그렇다. 창업자 이름을 딴 회사 이름은 분명 ‘버버리’로 적게 돼 있지만, 옷의 한 가지인 코트를 말할 때는 ‘바바리’로 적는다. 작은 야생마를 가리키는 ‘무스탕(mustang)’은 사실 ‘머스탱’이 맞는 발음이다. 하여 포드사의 자동차나 미국 텍사스주 도시 이름은 ‘머스탱’이라고 쓴다.

 

실제 발음과 표기가 이렇듯 엇갈리는 외래어·외국어가 숱하다. 일본식 발음을 받아들인 탓이 커 보인다. 흔히 색안경을 가리키는 ‘라이방’은 영어 상품명 ‘Ray Ban’에서 왔다. 하지만 옳은 발음 ‘레이밴’ 대신 일본식이 입에 붙는 바람에 사전에도 ‘라이방’으로 올랐다. ‘마후라’ 또한 목에 두르는 천 ‘머플러(muffler)’와 같은 말이라며 사전에서 늠름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심지어 자동차 소음기(消音器) 가리킬 때는 머플러 대신 마후라를 많이 쓴다.

잠옷처럼 입는 옷이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여보, 추리닝 바지 빨았나? 바께쓰에 있을걸. 쓸데없이 죽이 맞았다. ‘추리닝(←training)’ ‘바께쓰(←bucket)’ 때문에 ‘운동복’ ‘들통/양동이’를 골방에 가두다니.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일본식 영어가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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