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문을 닫아걸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두문(杜門)보다 무서운 것은 두구(杜口)다. 입을 닫아버린다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는 결설(結舌)이 있다. 혀를 묶어버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아첨하는 신하가 설쳐대면 곧은 신하들은 입을 다물어버린다’고 했다. 그에 따른 폐단은 분명했다. 위아래가 막혀 소통이 되지 않고 온 천하가 꽉 막혀버린다[閉塞(폐색)].
‘주역(周易)’에서 가장 좋은 상황을 뜻하는 괘는 태괘(泰卦)다. 태괘란 위에 곤(坤·☷)이 있어 겸손하게 아래로 향하고 아래에 건(乾·☰)이 있어 위를 향해 바르고 곧은 말을 올린다. 이것이 태평한 세상이다.
가장 나쁜 상황의 비괘(否卦)는 태괘와 정반대로 건(乾·☰)이 위에 있어 위로만 올라가고 곤(坤·☷)이 아래에 있어 아래로만 내려간다. 이를 옛날에는 비색(否塞)이라 했는데 폐색과 같은 말로 위아래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한마디 말[一言]로 국민들을 태괘로 이끌 수도 있고 비괘로 이끌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씨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기 바란다”고 말한 것은 태괘로 가는 길이다. 또 2020년에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린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한 것 역시 태괘로 가는 길이다. 그래야 위아래가 잘 섞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측근 인사들 수사한다고 윤석열 전 총장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자신을 비난했다고 한 30대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던 일은 대통령 본인 말대로 ‘좀스럽다’. 리더의 좀스러움은 간신 세상을 여니 비괘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러니 뛰어난 인재들은 두문불출하는 것이고 여권에서도 그나마 괜찮은 인물들은 입을 닫고 혀를 묶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남은 1년이라도 비괘보다는 태괘 쪽으로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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