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3> 慾善善將至

bindol 2021. 6. 1. 04:38

- 하고자 할 욕(欠-7)좋을 선(口-9)앞으로 할 장(寸-8)이를 지(至-0)

 

초나라 莊王(장왕)이 대부 士亹(사미)에게 태자 箴(잠)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러자 사미가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재주가 없어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장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좋은 점을 가지고 태자를 좋게 만드시오."

사미가 대답하였다.

"무릇 좋게 되는 일은 태자에게 달렸습니다. 태자가 좋게 되려고 하면, 좋은 사람이 이를 것입니다. 태자가 좋게 되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게 하려고 해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임금에게는 丹朱(단주)가 있었고, 순임금에게는 商均(상균)이 있었으며, 啓(계)에게는 五觀(오관)이 있었고, 탕왕에게는 太甲(태갑)이 있었으며, 문왕에게는 管(관)과 蔡(채)가 있었습니다. 이 다섯 왕은 모두 빼어난 덕을 지녔으나, 간악(奸惡)한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어찌 그들이 자식들을 좋게 만들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國語(국어)'의 '楚語 上(초어 상)'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善(선)을 내면의 미덕을 가리키는 말로 썼으며, 그런 미덕을 일깨워주는 것까지 아울러 가리키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을 암시한다. 이미 '止於至善(지어지선)'을 말하기 전에 먼저 '明明德(명명덕)'을 언급했다는 데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는 점인데, '지극히 좋은 것'은 그저 밖에 있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있는 '밝은 덕'을 먼저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이 좋게 되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렸다. "太子欲善, 善人將至"(태자욕선, 선인장지) 곧 "태자가 좋게 되려고 하면, 좋은 사람이 이를 것입니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이어야 자신 안에 있는 덕을 비로소 밝힐 수 있으며 또 좋은 사람도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지어지선, 즉 지극히 좋은 데에 머문다는 것은 밝은 덕이 없어서는 가능하지 않다. 지극히 좋은 데를 늘 누군가가 알려주고 일깨워준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매우 드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히지 못한 자라면 알려주거나 일깨워준들 듣는 척이나 하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바로 이 때문에 밝은 덕을 밝히는 일을 먼저 거론한 것이다. 공자가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리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짊에 머무니 아름답다 하리라! 잘 가려서 어짊에 머물지 못한다면, 어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