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할 안(宀 - 3)어질 인(人 - 2)이로울 리(刀 - 5)
밝은 덕을 밝힌 자는 仁者(인자)요 知者(지자)다. 이런 인자나 지자라야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좋은 것을 알아보고 가장 좋은 데를 찾아낼 수 있으며, 가장 좋은 것을 오래 지니고 가장 좋은 데서 오래 머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 安仁; 知者, 利仁."(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 안인; 지자, 리인) "어질지 않은 자는 간소함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즐거움에 길이 머물지 못하지. 어진 자는 어짊을 편안하게 여기고, 아는 자는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네."
그러나 밝은 덕을 밝히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토록 儒者(유자)들이 떠받드는 聖君(성군)을 아비로 두었음에도 그 자식들이 奸惡(간악)한 자가 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결국, 지극히 좋은 것은 알기도 어렵고, 알더라도 오래 지니고 이어가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머뭇거리거나 뒷걸음질할 수도 없다. 그토록 어렵고 힘든 길이 바로 大學(대학)의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새겨두어야 할 점은 '관자'에서 "크나큰 승리란 여러 번 이긴 것을 모은 것이다"고 말했듯이 밝은 덕을 밝히는 일은 크나큰 승리를 거두는 일과 같다는 사실이다. 밝은 덕은 일상의 그 흔하고 하찮은 일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고 잡도리하며 이치를 터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잘한 덕이 모이고 차츰차츰 밝아져서 이루어진다. 결코 단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무슨 거창한 일을 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맹자나 순자가 그 암울한 시대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통찰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晉(진)나라의 重耳(중이)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라를 떠나 천하를 떠돌아야 했다. 19년이나 떠돌다가 겨우 귀국하여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면서 覇者(패자)의 위치에 올랐으나, 떠돌면서 크고 작은 艱難辛苦(간난신고)를 두루 겪었다. 중이의 일행이 衛(위)나라에 이르렀을 때 일이다. 위나라 文公(문공)이 邢(형)나라와 狄人(적인)의 침공을 걱정하여 중이 일행을 예의로써 대접하지 못했다. 그때 신하인 寧莊子(영장자)가 아뢰었다.
"무릇 禮(예)란 나라의 벼리이고, 親(친)은 백성들을 뭉치는 것이며, 善(선)은 덕을 세우는 바탕입니다. 나라에 벼리가 없으면 잘 매조질 수 없고, 백성들이 뭉치지 않으면 단단해지지 않으며, 덕이 서지 않으면 튼튼하게 설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군주가 삼가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군주께서는 그것들을 버리시니, 어찌 옳지 않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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