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3> 苟日新

bindol 2021. 6. 3. 05:16

참으로 구(艸-5)날 일(日-0)새로울 신(斤-9)

 

탕왕이 대야에 쓴 글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은 새로워짐의 세 단계를 담고 있다. "참으로 어느 날 새로워진다"는 뜻의 苟日新(구일신)은 공부의 효과가 처음 나타났을 때를 가리킨다. '논어' '學而(학이)'편에서 공자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곧 "배우고 그것을 때맞게 익히면, 이야말로 기쁘지 아니하냐!"라고 한 말에도 이런 뜻이 담겨 있다.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듣거나 보았다는 뜻이지, 곧바로 옳은지 그른지까지 다 안다는 뜻은 아니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알고 제 것이 되도록 하려면, 배운 것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과학에서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는데, 정치학을 비롯한 인간학에서는 실천을 한다.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배운 것의 참뜻을 알게 되고, 나아가 이치를 깊이 느끼고 터득하게 된다. 그것을 두고 "이야말로 기쁘지 아니하냐!"라고 말한 것이다.

그 기쁨을 느낄 때, 그 느낌이 바로 새로워짐이다. 배운 것을 몰랐을 때와 다른, 이전보다 더 새로워진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한 차례 광풍처럼 찾아올 뿐, 저절로 더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 번 느낀 새로움을 다시 느끼거나 이어가려면, 배우고 실천하는 일을 쉬지 않고 해야 한다. 한 차례 새로움을 느꼈다고 해서 대단한 성취를 한 것은 아니다. 고작 맛을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전에 이런 경험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스스로 대단한 도약이라도 한 듯이 여길 수도 있다. 그것은 착각이다.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고 성큼 도약하고 싶다면, 공부를 거듭해야 한다. 그래서 "날마다 더욱 새롭게 하라"는 日日新(일일신)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새롭게 하려고 애쓰는 일이 바로 수신하는 공부다.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공부라야 德(덕)을 갖출 수 있다. 덕은 공부한 보람이고 효과다. 그 덕이 곧 제가와 치국, 평천하의 밑천이고 방편이다. 덕이 없이 제가나 치국, 평천하를 하려 들면, 도리어 집안이나 나라, 천하를 어지럽히게 된다. '관자'의 '심술 하'에 나온다.

"뜻과 기운이 안정된 뒤에야 행동이 올바름으로 돌아간다. 기운이란 몸에 가득한 것이고, 행동이란 올바름이 드러난 것이다. 몸을 채운 것이 아름답지 않으면 마음이 사물과 맞지 않고, 행동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 이러하므로 성인은 하늘처럼 되어서 사사로이 덮는 일이 없고, 땅처럼 되어서 사사로이 싣는 일이 없다. 사사로움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