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6> 不恥下問

bindol 2021. 6. 3. 05:27

아닐 불(一-3)부끄러워할 치(心-6)아랫사람 하(一-2)물을 문(口-8)

 

'논어' '公冶長(공야장)'에는 또 다음의 대화가 나온다.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자공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여쭈었다. '공문자는 어찌하여 文(문)이라 일컬어졌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재바르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이라 일컬어졌다.'"

뛰어난 스승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스승이 없어야 마땅하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스승이 없듯이,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누구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아울러 갖고 있다. 그러므로 좋은 점은 더 갖추려 하고 나쁜 점은 고치려 하는 것이 학인의 자세다. 학인에게는 좋은 점을 가르쳐주는 이도 스승이요, 나쁜 점을 일깨워주는 이도 스승이다. 그러니 누구나 내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를 잊지 않고 늘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일이 곧 '好學(호학)'이다. 공자가 자부했던 일이다.

참으로 배우기를 좋아한다면, 때와 곳을 가려서는 안 되며 상대 또한 가려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의 신분이나 나이, 성별 따위를 가리면서 배우려 한다면, 그는 이미 배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없다.

배우지 않아도 나빠지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는 군주 노릇도 관리 노릇도 할 수 없다. 나빠지지 않는 것으로는 평범한 삶도 이어가기 어렵고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하물며 남을 위하고 백성을 살리는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새로워지지 않는 데서, 나아지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나아지지 않기만 한다면야 다행이다. 그러나 배우지 않아서 잘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스스로 잘못하지 않아도 그릇된 사람을 가까이해서 잘못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배우지 않으면 나를 모르고 사람을 모르는데, 어찌 사람들과 어긋나는 일 없이, 잘못되는 일 없이, 응등그러지는 일 없이 잘 살 수 있겠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