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77> 關羽

bindol 2021. 6. 5. 05:24

- 성 관(門-11)깃 우(羽-0)

 

또 자신이 강하거나 옳다고 굳게 믿는 사람은 자칫 상대를 업신여길 수 있다. 옳다고 믿는데다 용맹하기까지 하다면, 그릇되거나 비겁하다고 여겨지는 상대를 하찮게 여기기 십상이다. 게다가 상대의 지위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내세우는 이라면, 자신이 지나쳐 오만함으로 치우칠 수 있다. 蜀漢(촉한)의 명장 關羽(관우, ?∼220)가 꼭 그런 인물이었다.

관우가 날아오는 화살에 왼쪽 팔이 꿰뚫린 적이 있었다. 나중에 상처가 다 나았는데도 잔뜩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이면 으레 뼈에 통증이 왔다. 의원이 관우에게 말했다.

“화살촉에 독이 있었는데, 그 독이 뼛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팔을 찢어서 뼛속의 독소를 없애면 통증이 사라질 것입니다.”

관우는 곧 팔을 뻗어서 의원에게 째라고 했다. 그때 관우는 마침 장수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고 있었다. 팔에서 피가 흘러 뚝뚝 떨어지는데도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웃으면서 말을 했다.

관우의 용감하고 호방한 기상을 잘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그의 이런 기상을 높이 평가해서 조조도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이미 관우는 유비와 의형제로서 결의를 맺은 터였으므로 털끝만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관우는 누구 앞에서나 당당했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다음은 陳壽(진수)가 쓴 ‘삼국지’의 ‘蜀書(촉서)’의 <關羽傳(관우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원전 219년, 유비가 한중의 왕이 되자 관우를 前將軍(전장군)으로 삼았다. 이 해에 관우는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樊城(번성)에서 曹仁(조인)을 쳤다. 조조는 于禁(우금)을 보내 조인을 돕게 했다.

가을이 되어 폭우가 쏟아져 한수가 흘러넘치는 바람에 우금이 이끄는 七軍(칠군)이 모두 물에 빠졌다. 우금은 관우에게 투항했고, 관우는 또 장수 龐德(방덕)을 참수했다. 梁縣(양현), 郟縣(겹현), 陸渾縣(육혼현) 등 여러 현의 도적들 가운데는 멀리서 관우의 휘하에 들어가 그 분대가 된 자도 있었다.

관우의 위세는 그야말로 중원을 진동시켰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