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 참((斤-7)깃 우(羽-0)및 급(又-2)아들 자(子-0)고를 평(干-2)
관우가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 조조는 許都(허도)를 떠나 관우의 예봉을 피할 궁리를 했다. 司馬懿(사마의)와 蔣濟(장제)는 관우가 뜻을 얻게 되는 것을 손권이 바라지 않을 테니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다스리도록 하면 번성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조는 이 의견을 따랐다.
그 전에 관우가 번성을 포위했을 때, 손권이 사자를 보내 돕기로 해놓고서 사자에게 천천히 가도록 칙명을 내렸다. 관우는 지원군이 늦게 온 데 대해 화를 냈고, 또 스스로 우금 등을 얻었으므로 “한낱 오소리가 감히 이렇게 하다니, 만일 번성을 공략하게 된다면 내가 너를 멸망시킬 수 없겠는가!”라고 욕했다.
이 말을 들은 손권은 관우가 자신을 경시하고 있음을 알고 거짓 편지를 써서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다. 또 손권이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또 南郡(남군) 태수 麋芳(미방)이 江陵(강릉)에 있고 장군 士仁(사인)이 公安(공안)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미워하고 있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주면서도 힘을 다해 돕지는 않았다. 이에 관우가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고 했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손권이 미방과 사인을 은밀하게 꾀니,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했다. 그때 조조가 徐晃(서황)을 보내 조인을 도왔기 때문에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러나 미방과 사인의 내통으로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여 관우와 그 아들 關平(관평)을 사로잡았다. 손권이 관우를 살려주어 유비가 조조의 적수가 되게 하려 하자, 측근들이 “이리 새끼는 기를 수 없습니다. 훗날 틀림없이 해를 끼칠 것입니다”라며 말렸다. 이리하여 곧 관우와 그 아들의 목을 베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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