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심(心-0)참으로 성(言-7)구할 구(水-2)이 지(丿-3)
그런데 11-2에서는 흥미로운 고백을 하고 있다. 사실 고대나 중세에 군주와 관리는 대대로 세습되는 신분이어서 미리 그 자리에 걸맞은 덕성과 능력을 갖추어둘 수 있었음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했음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백성이 어떠한 존재이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지를 잘 모르면서도 군주가 되고 관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리 그 자리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마음으로 참되게 구하는” “心誠求之”(심성구지)할 수만 있다면, 미흡한 점은 있겠으나 그래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직업을 얻거나 벼슬살이 하는 일을 지혜와 능력을 다 갖춘 뒤에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청년은커녕 중년에도 직업이나 벼슬을 얻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군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태자나 세자 시절부터 학문에 전념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통치자가 지녀야 할 정치적 역량을 다 갖출 수 없다. 고려와 조선에서 經筵(경연)을 시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경연은 왕이 군주로서 덕성을 함양하고 통치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현명하고 경륜이 많거나 학식이 풍부한 신하들과 經書(경서)를 강론하면서 정책을 토론하는 제도다. 간단히 말하면, 유교의 이상적인 정치인 德治(덕치) 또는 禮治(예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인데, 신하들이 왕권을 규제하는 기능도 있었다. 요컨대, 경연은 어떤 군왕도 통치자로서 역량을 다 갖춘 뒤에 즉위하지 않는다는 인식 위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미유학양자이후가자야) 즉 “자식 기르는 법을 다 배운 뒤에 시집간 이는 아직 없었다”는 말이 그런 뜻이다.
유교가 君子(군자)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내세우지만, 군자에서 그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賢者(현자)가 되고 聖人(성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이는 곧 사람의 인격이나 지혜가 단박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배우기를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스스로 모자람을 인식하고 늘 물음을 던지며 새로워지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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