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 군(口-4) 신하 신(臣-0) 없을 무(火-8) 항상 상(巾-8) 자리 위(人-5)
사묵의 대답은 이어진다. “故詩曰, ‘高岸爲谷, 深谷爲陵.’ 三后之姓於今爲庶, 主所知也. … 魯文公薨, 而東門遂殺適立庶. 魯君於是乎失國, 政在季氏, 於此君也四公矣. 民不知君, 何以得國? 是以爲君愼器與名, 不可以假人.”(고시왈, ‘고안위곡, 심곡위릉.’ 삼후지성어금위서, 주소지야. … 노문공훙, 이동문수살적입서. 노군어시호실국, 정재계씨, 어차군야사공의. 민부지군, 하이득국? 시이위군신기여명, 불가이가인)
“사직의 제사를 받들 사람이 고정된 것도 아니고 군주와 신하의 지위도 고정된 것이 아니니, 예부터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시경’ <十月之交(시월지교)>에서도 ‘높은 언덕이 골짜기 되고, 깊은 골짜기 언덕 되었네’라고 노래했습니다. 고대 禹王(우왕)과 하나라, 상나라 왕들의 자손이 이제는 서민이 된 것은 주군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 노나라 문공이 죽자 동문수가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노나라 군주는 나라를 잃고 정권은 계씨에게 넘어갔으니, 4대가 지났습니다. 백성이 군주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라를 얻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군주된 자는 군주의 기물과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묵은 군주와 신하의 자리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했다. 난세인 춘추시대 말기라고 하지만, 놀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제후국에서 그런 하극상 조짐이 있었고, 晉(진)과 齊(제)나라가 다른 성씨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사태가 벌어졌다. 진(晉)나라는 주 왕조를 일으킨 武王(무왕)의 아들 唐叔虞(당숙우)에서 시작된 姬氏(희씨)의 나라다. 그러나 춘추시대 중기부터 군주들이 失政(실정)을 거듭해 권력이 卿大夫(경대부)들에게 넘어갔다. 이윽고 기원전 403년 韓氏(한씨)·趙氏(조씨)·魏氏(위씨)가 삼분하여 각각 나라를 세우면서 진나라는 사라졌다. 기원전 386년, 田和(전화)는 康公(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를 차지했다.
제나라는 姜太公(강태공)의 후손 姜氏(강씨)가 다스리던 나라다. 이 일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 아니다. 100여 년 전부터 전씨 가문이 세력을 떨치면서 백성에게 은덕을 베푼 결과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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