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23> 掌孤

bindol 2021. 6. 6. 04:44

맡을 장(手-8)고아 고(子-5)

 

직전 <222회>에 나온 ‘관자’의 글을 풀면 이렇다.

“이른바 ‘고아를 딱하게 여긴다’는 말은 무릇 성읍과 도성에 모두 掌孤(장고)라는 관리를 두어서 백성이 죽은 뒤 그 고아가 어려서 부모의 양육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경우에는 마을 사람이나 아는 사람, 친구에게 맡기는 일이다. 고아 한 명을 기르는 자에게는 아들 한 명의 수자리를 면제해주고, 고아 두 명을 기르는 자에게는 아들 두 명의 수자리를 면제해주고, 고아 세 명을 기르는 자에게는 온 집안사람의 수자리를 면제해준다. 장고는 고아가 사는 곳을 자주 찾아가서 위문하고, 반드시 잘 먹는지, 굶주리는지, 추위에 떠는지, 몸에 병이 있는지 따위를 묻고 가엾게 여기며 살핀다. 이것이 ‘고아를 딱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어른을 어른으로 대하는 일은 말씨와 행동을 깍듯하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늙은이나 고아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보탬이 될 만한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또 일흔이 넘은 늙은이나 부모 잃은 고아를 보살피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보살피는 사람이나 그 가족에게도 큰 혜택을 주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관자’는 현대의 복지 개념을 연상케 하는 꽤 자세한 방안을 제시했다.

홀로 된 노인이나 고아는 그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다. 오늘날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약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복지 정책을 펴는 일이 더욱더 어렵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갖가지 정책을 때맞게 마련해서 펴는 노력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노력을 다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복지와 분배 문제로 이른바 보수와 진보 사이에 논란이 있고 심지어 시민 사이에서도 대립과 갈등이 불거진다. 특히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과 분배를 중시하는 경제 정책 사이의 논쟁은 매우 격렬한데, 이런 논란과 논쟁 자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마치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개인주의인 것처럼 여기는 데 있다. 복지와 분배는 바로 이런 이기주의를 불식시키려는 데서 나온 방책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