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을 식(食-0)준마 준(馬-7)말 마(馬-0)의 지(丿-3)고기 육(肉-0)
그런데 목공 14년(기원전 646년)에는 秦(진)나라에서 기근이 들어 晉(진)나라에 식량을 요청했다. 혜공은 신하들과 의논하였다. 혜공의 외삼촌인 대부 虢射(괵석)이 말했다.
“기근을 틈타 정벌하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식량을 제공하는 대신에 정벌 전쟁을 벌이자는 제안인데, 그야말로 背恩忘德(배은망덕)을 부추긴 셈이다. 애초에 은혜 따위는 품은 적도 없었던 혜공도 그 말에 따랐다.
이듬해 혜공은 군대를 일으켜 秦(진)나라를 공격했다. 목공도 군대를 동원하여 맞섰다. 목공은 혜공과 韓地(한지)에서 맞붙었다. 혜공은 자신의 군대를 뒤에 남겨둔 채, 목공의 군대와 다투고 돌아오다 말의 발이 묶여 나아가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목공과 그의 부하들이 재빨리 혜공을 뒤쫓았으나 잡지 못하고 반대로 혜공의 군대에 포위당했다. 혜공의 군사들이 목공을 공격했고, 목공은 부상을 당했다. 이때 갑자기 300명의 백성이 나타나 위험을 무릅쓰고 혜공의 군대에 돌진하여 포위를 풀었으므로 목공은 위기에서 벗어나고 게다가 혜공도 사로잡았다.
갑자기 나타난 백성 300명은 기산 아래의 촌사람들이었다. 일찍이 목공이 좋은 말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이들 300명이 함께 말들을 잡아서 먹어버렸다. 관리가 이들을 잡아다 법대로 처벌하려 하자, 목공이 “군자는 짐승 때문에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또 내가 듣기에 좋은 말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이 상한다고 했다”고 말하고는 이들 모두에게 술을 내리고 용서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이들 300명은 목공이 혜공과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목공을 따랐다. 그러다가 목공이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무기를 들고 필사적으로 싸워 이전에 용서받은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이 일에서 ‘식준마지육(食駿馬之肉)’이라는 성어가 나왔다.
이 300명의 백성은 배은망덕한 혜공과 사뭇 달랐으니, ‘논어’ ‘憲問(헌문)’에서 공자가 “以德報德”(이덕보덕) 곧 “덕으로써 덕을 갚는다”고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한 이들이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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