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88] 求容과 苟容의 차이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구용(求容)이나 구용(苟容) 모두 이미 중국 춘추시대 때부터 쓰인 단어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이때의 용(容)은 윗사람에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에서 용납(容納)을 뜻한다. 그러니 구용(求容)은 용납받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이거야 조직 사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人之常情)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구용(苟容)은 구차스럽게 용납받으려 하는 것이다. 구차스럽다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으로 용납받으려 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구차스러움을 그래서 짧게 비례(非禮), 즉 예가 아니라고 했다. 이때의 예란 예법이 아니라 일의 이치, 즉 사리(事理)다. 그러니 그나마 구용(求容)은 사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구용(苟容)은 한참 벗어난 것이다.
아미구용(蛾眉苟容)이라고도 했고 구합구용(苟合苟容)이라고도 했다. 아미(蛾眉)란 누에나방의 촉수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눈썹을 오르내리며 아첨을 해 댄다는 뜻이다. 구합(苟合)은 구차스럽게 윗사람의 뜻에만 맞추는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혼군(昏君)의 정의는 이러했다.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 그러니 역사에서는 혼군(昏君)이 있으면 다수의 영신(佞臣)들이 말재주를 부리며 구용(苟容)을 떨어대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치고 임금을 망치고 끝내는 자기 몸을 망치는 일들이 반복돼 왔다.
이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고 대선에 나오겠다며 움직이고 있는 두 정치인의 모습에서 구용(求容)이 아닌 구용(苟容)을 종종 보게 된다. 여권의 1등 주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구용(苟容)이 심한 듯해 민망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아직까지 구용(求容)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관 재직 시절 비례(非禮)와 무례(無禮)로 일관했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도 곧 대권을 향한 여권의 구용(苟容) 경쟁에 뛰어든다고 하니 가관(可觀)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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