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구중자황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구중자황(口中雌黃)이란 ‘입속에 자황(雌黃)이 있다’는 말이다. 자황이란 비소(砒素)와 유황(硫黃)의 화합물로, 약재로도 썼고, 옛날 중국에서는 잘못 쓴 글자를 고칠 때 썼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글자를 지우는 ‘화이트’인 셈이다. 그래서 지론(持論)을 수시로 바꾸거나 말하자마자 취소하는 등의 행위를 비판할 때 “구중자황하는 자”라고 했다.
왕연(王衍·256~311년)은 서진(西晉) 사람으로 노장(老莊)사상에 빠져 현언(玄言)을 일삼았다. 현언이란 허무(虛無)나 무위(無爲)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청담(淸談)이라고도 한다. 주로 위진(魏晉) 시대에 이런 풍조가 크게 유행했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바로 그들이다. 왕연은 이런 죽림칠현의 두 거두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을 특히 흠모했다.
그러나 정작 벼슬길에 나아간 왕연의 모습은 무욕(無慾)이 아니라 탐욕(貪慾)이었다. 정치에 일정한 지향이 없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니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구중자황’이다. 자기가 한 말을 자기 입안에서 지워버린다는 말이다. 경국(經國)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권력욕과 보신을 위해서만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사마월(司馬越)이란 사람에게 가서 붙었다. 그런데 311년 회제(懷帝) 영가(永嘉) 5년에 사마월이 죽고 석륵(石勒)에게 붙잡히자 또 구중자황하며 석륵에게 목숨을 구걸했으나 살해당했다.
‘기본 소득’ 하면 거의 온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어 온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민의 힘 윤희숙 의원의 집중 포화 때문인지 스스로 문제점을 인지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거둬들였다. 그러자 같은 당 박용진 대선 예비 후보가 “기본 소득이 제1 공약이 아니라고 한 것을 보고 귀를 의심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기본 소득’일 정도로 강조해온 핵심 정책을 스스로 자황으로 지워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그가 보여줄 다음 구중자황은 뭘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다려지는 것은 분명하다.
'간신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한우의 간신열전] [93] 지도자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0) | 2021.07.21 |
---|---|
[이한우의 간신열전] [92] 소인은 비이부주한다더니 (0) | 2021.07.14 |
[이한우의 간신열전] [90] 간사한 자의 言行 (0) | 2021.06.30 |
[이한우의 간신열전] [89] 조선의 586, 士林의 뿌리 (0) | 2021.06.23 |
[이한우의 간신열전] [88] 求容과 苟容의 차이 (0) | 2021.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