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시사한자] 殺(죽일 살) 風(바람 풍) 景(볕 경)
숨을 꽉 막히게 하는 모습이 살풍경(殺風景)이다. 글자 그대로 살기가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문을 열어 놓고 달리는 자동차, 향긋한 차 한 잔 앞의 폭탄주, 음악 연주회에서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등이 그 예에 해당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당(唐)대의 유미파(唯美派)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본격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나온다. 그는 《잡찬(雜纂)》이라는 책에서 여섯 가지의 살풍경을 들었다. 우선은 ‘흐르는 맑은 물에 발 씻기’다. 청류(淸流)의 맑고 깨끗한 풍취가 오탁(汚濁)의 발 씻기 앞에 무너지고 있다.
다음은 ‘화사한 꽃 위에 바지 올려놓고 말리기’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에 일상의 범속함이 끼어들어 정취가 망가지고 있다. ‘가파른 산에 집짓기’는 산의 좋은 경치가 사람의 욕망 앞에 무너지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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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태워 학 삶아 먹기’도 있다. 焚琴煮鶴(분금자학)으로 적는 상황이다. 거문고와 학은 인문(人文)을 상징하는 물건이자 동물이다. 지식사회의 전통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런 거문고를 태워 장작으로 삼고, 그 위에 죽인 학을 냄비에 담아 삶는 행위다. 사람이 지닌 고급스러운 정신을 크게 망가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꽃 앞에서 차 훌쩍거리며 마시기’, ‘고요한 숲에서 큰소리로 외치기’가 그다음을 잇는다. 꽃이 지니는 아름다움이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흩어지고, 세속을 벗어난 고요함이 저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 의해 무너지니 살풍경으로 꼽기에는 그럴듯하다.
‘살풍경’은 煞風景으로도 적는다. 마찬가지 뜻이다. 앞의 첫 글자는 모두 죽이다, 없애다 등의 의미를 지녔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여러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빚는 심각한 부조화를 가리킨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갈수록 상황이 험악해져 두 곳에 대외 수출량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기(寒氣)를 넘어 깊은 위기감마저 느끼게 하니 영락없는 살풍경이 아닐 수 없다. 더 깊고 어두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애로(隘路)에 접어들기 전에 만반의 채비를 갖춰야 하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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