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49] 고향 동네의 성벽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황학루(黃鶴樓)를 두고서는 적지 않은 문인들이 시를 남겼다.
그중 압권(壓卷)에 해당하는 작품의 주인공은 당나라 최호(崔顥)다.
시 말미에는 멀리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정서가 등장한다.
“해는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인가(日暮鄕關何處是)”라는 대목이다.
중국인이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다.
‘고향’을 ‘향관(鄕關)’으로 적었다는 점이 퍽 이채롭다.
중국 사전은 이를 그저 ‘고향’으로 풀거나 그 길목에 있는 관문(關門) 정도의 뜻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 ‘관문’은 전쟁을 위해 쌓거나 짓는 ‘성(城)’의 동의어다.
흙이나 벽돌로 겉을 두른 성벽이 있은 다음에야 관문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관’의 일차적 의미는 ‘고향 동네에 쌓은 성’이다.
가향(家鄕), 고리(故里), 노가(老家)와 함께 집 주위에 심던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합쳐 부른 상재(桑梓) 등 중국인이 고향을 지칭하는 단어는 풍부하다.
그러나 군사(軍事)의 필요로 인해 지어진 ‘성’에 고향의 뜻을 겹쳐 표현하는
이 경우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듯하다.
이는 늘 가혹하게 번졌던 싸움 속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전쟁 의식과 관련이 있다.
잔혹한 다툼의 와중에서 중국인들은 견고하게 쌓은 고향의 성에 몸을 들여야
평온하며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미국 등 서방세계가 자국을 욕보이려 한다며
“우리의 피와 살로 쌓은 철벽 장성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라고 경고했다.
‘향관’에 기대 외부의 공격을 막겠다는 방자(防者)의 논리다.
그러나 미국이 제공한 자유무역 질서에 편승했던 중국은 오히려 다음 패권을 늘 노려왔다.
‘쟁패(爭霸)’라는 그 어두운 전쟁 의식이 사실 요즘 미·중 충돌 국면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중국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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