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50] 호랑이한테 가죽 뺏기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일컫는 성어는 퍽 풍부하다. 말라 죽은 나무에 꽃이 핀다는 고목생화(枯木生花), 허공에 떠 있는 집채의 공중누각(空中樓閣), 거북이 등에 털이 나며 토끼 머리에 뿔이 난다는 귀모토각(龜毛兎角) 등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말이다. 중국인들이 자주 쓰지만 우리에게는 생소한 성어가 있다. 여호모피(與虎謀皮)다. 호랑이에게 “네 가죽 좀 벗어다오”라고 하는 경우다. 사나운 호랑이 가죽을 생으로 벗긴다는 얘기니 역시 사정의 불가능함을 알리는 말이다.
본래 이 성어의 주인공은 호랑이가 아니라 여우였다. 정확하게 적자면, 여호모피(與狐謀皮)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는 책에 “여우에게 가죽 벗어 달라 했더니 멀리 산속으로 달아났다”는 내용으로 나와 있다.
어떤 곡절로 ‘여우’가 ‘호랑이’로 둔갑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사정의 불가능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랬을 법하다. 이 말을 자주 썼던 유명 정치인은 옛 중국 국민당(國民黨)의 최고 권력자 장제스(蔣介石)와 그의 아들 장징궈(蔣經國)다.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옮겨온 뒤 두 사람은 자주 이 성어를 인용했다. 공산당과 평화적인 협상으로 성과를 거두려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공산당의 평화 협상 전술에 속아 끝내 대륙마저 잃은 뒤의 깊은 깨달음이었으리라 보인다.
장제스, 장징궈 두 부자(父子) 권력자의 경고가 옳은지는 더 따져볼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상대하는 공산당의 중국이 그저 ‘여우’가 아닌, ‘거대한 호랑이’로 커버렸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달라지겠지…’라는 단순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비웃으면서 말이다.
강대해진 중국을 상대하느라 미국이 진땀을 빼는 요즘이다. 미국이 뒤늦게 여러 조치를 강구하지만 중국은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에 쩔쩔매는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험에서 나온 말은 마구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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