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경칩(驚蟄)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나오고, 겨울 석 달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벌레도 꿈틀거린다는 驚蟄이다. 驚蟄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 들어가 칩거하던(蟄) 벌레들이 놀라(驚)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驚은 의미부인 馬와 소리부인 敬이 합쳐져, 말(馬)이 놀라는 것을 말했으나 이후 ‘놀라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馬는 갑골문에서부터 기다란 머리통과 날리는 듯한 갈기, 축 처진 꼬리 등이 선명하게 그려져 말의 특징을 잘 묘사했으며, 지금의 자형에서도 그 흔적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敬은 갑골문에서 苟(진실로 구)로 썼으나 금문에 들면서 손에 몽둥이를 든 모습인 복(칠 복)을 더하여 苟로부터 분화되었다. 苟는 머리에 羊이 그려진 꿇어앉은 사람을 그렸다. 羊은 양을 토템으로 삼던 고대 중국의 서북쪽의 羌族(강족)을 뜻하고, 꿇어앉은 사람은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羌族은 갑골문 시대 때 商族(상족)과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민족이었다.
전쟁에서 져 포로로 붙잡혀 꿇어앉은 羌族에게 商族들은 ‘진실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복종하길 요구했을 것이다.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지 복을 더하여 매를 들어 강제로 굴복시키는 모습을 강조했다. 이후 敬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여러 욕망들을 억제하여 언제나 敬虔(경건)한 자세를 가지도록 만드는 정신을 말하는 철학적인 용어로 변했다.
蟄은 의미부인 (충,훼)과 소리부인 執으로 구성되어, ‘숨다’가 원래 뜻이다. 벌레(충,훼)들이 冬眠(동면)에 들어가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蟄居(칩거)라는 말이 생겼다.
하지만 소리부로 쓰인 執은 갑골문에서 꿇어앉은 사람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모습으로, ‘체포된’ 모습을 그렸다. 붙잡혀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으니 꼼짝달싹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執에는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 들어 있으며, 執行(집행)이나 固執(고집) 등의 뜻이 생겼다. 그렇게 본다면 執은 의미부로서의 기능도 함께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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