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이야기

[한자 뿌리읽기]<30>비단(絲)과 실크(silk)

bindol 2021. 9. 4. 08:34

[동아일보]

도자기는 서구인들에게 가장 중국적인 것으로 여겨져 ‘차이나(china)’로 불렸지만, 도자기만큼이나 대표적인 중국 것이 비단이다. ‘실크 로드’가 대변하듯 비단은 예로부터 서방으로 나가는 주요 수출품이자 서방인들이 근세까지도 그 비밀을 풀지 못했던 신비의 섬유이다.

1백여 가지의 공정과정이 말해주듯 비단 제작은 대단히 손이 많이 가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비단은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섬유이다.

갑골문에 이미 蠶(누에 잠)과 桑(뽕나무 상)은 물론 비단 제작에 관한 다양한 글자들이 등장함으로써 당시에 비단 생산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타래처럼 만들어 놓은 비단실을 그린 것(왼쪽 그림)이 요이다. 조그만 누에고치 하나에서 잣을 수 있는 실의 길이가 1백 미터나 될 정도로 비단실은 대단히 가늘다. 여기에서 요에 ‘가늘다’, ‘작다’, ‘약하다’의 뜻이 생겼다. 요에 力(힘 력)이 더해지면 幼가 된다. 幼兒(유아)는 힘(力)이 약하기(요) 때문이다. 그래서 幼兒처럼 하는 짓이나 생각이 어린 것을 幼稚(유치)하다고 한다.

玄은 요에 뚜껑(두)이 덮힌 모습으로, ‘캄캄하다’나 ‘어둡다’는 뜻을 가진다. 우리말에서는 ‘검다’로 풀이되지만 사실 黑(검을 흑)과 같은 검음은 아니다.

속이 캄캄하여 짐작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지극히 그윽한 상태를 玄이라 한다. 그래서 玄學(현학)이라고 하면 대단히 깊은 談論(담론)이나 학문을 말한다.

系는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고치에서 손(爪·조)으로 비단실을 뽑는 모습을 그려, 여럿의 고치에서 나온 실이 손가락에 엮여 있는 모습이다. 이로부터 系는 여럿이 하나로 묶이는 것을 뜻하여, 系統(계통)이나 體系(체계) 등의 말이 나왔다. 系에 子(아들 자)가 더해진 孫(손자 손)은 끝없이 ‘이어지는(系) 자손(子)’를 뜻한다.

요에서 파생된 (멱,사) 또한 비단 실타래를 뜻한다. (멱,사)이 둘 모이면 絲가 되는데, 영어에서의 ‘실크(silk)’는 바로 絲의 고대음을 대역한 것이다. 우리말의 ‘실’도 알고 보면 絲의 대역어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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