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36] 남한을 살찌운 탈북민

bindol 2021. 9. 9. 05:02

[차현진의 돈과 세상] [36] 남한을 살찌운 탈북민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https://www.chosun.com/nsearch/?query=%EC%B0%A8%ED%98%84%EC%A7%84%EC%9D%98%20%EB%8F%88%EA%B3%BC%20%EC%84%B8%EC%83%81

 

www.chosun.com

입력 2021.09.09 00:00

 

 

 

6·25전쟁을 전후해 월남한 뒤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사람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유택(2대, 부총리), 유창순(6대, 국무총리), 신병현(12대, 부총리), 김성환(11대) 총재. 순서는 칼럼 등장순. /한국은행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했지만, 남조선에 미군이 들어온 것은 9월 8일이었다. 9월 2일 일본에 정식 항복 문서를 받느라 시간이 걸렸다. 미군이 법적 절차를 하나하나 밟는 사이에 소련군은 다짜고짜 탱크를 밀고 내려와 8월 24일 평양을 접수한 뒤 실효적 지배에 들어갔다.

 

소련군의 첫 번째 조치는 조선은행권 유통을 전면 금지하고 소련 군표를 화폐로 쓰는 것이었다. 그 조치는 북한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열흘 만에 취소되었다. 소련군의 행태는 그런 식이었다. 남한의 미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난폭하고 즉흥적이었다.

 

술 취한 소련군 병사가 한밤중에 은행원 집에 쳐들어가서 머리에 장총을 겨누며 은행 금고 문을 열라고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술값이 필요했던 것이다. 조선은행 해주 지점 김유택(훗날 한은 총재, 부총리) 지배인이 그렇게 돈을 털리자 김일성 정권에 환멸을 느꼈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혈혈단신 서울로 향했다. 한국전쟁 직전 아내와 아들(김철수 전 상공장관)을 서울로 불러들이기 전까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비슷한 무렵 평양 지점의 유창순(훗날 한은 총재, 국무총리), 청진 지점의 장기영(부총리, IOC 위원), 신의주 지점의 신병현(한은 총재, 부총리)도 비슷한 경험 끝에 서울로 향했다. 평양 지점의 김성환(한은 총재)은 한국전쟁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산에서 합류했다.

 

그 탈북민들은 기상천외한 세금으로 중산층이 파괴되고, 집단학습으로 지식인이 모멸당하는 것을 보고 고향을 등졌다. 아인슈타인처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한 유태인 과학자들이 미국 사회의 저력이 되었듯이 소련군과 김일성을 피해 남하한 탈북 엘리트들은 훗날 남한 사회의 큰 저력이 되었다.

 

오늘은 우리 근대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1948년 오늘 엘리트들이 이탈한 북한에서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했다. 1945년 오늘은 미군이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조선총독에게 항복 문서를 받고 군정을 시작했다. 1976년 오늘 중국의 마오쩌둥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