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34] 그림의 떡, 코앞의 섬

bindol 2021. 8. 26. 06:31

[차현진의 돈과 세상] [34] 그림의 떡, 코앞의 섬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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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8.26 00:00

 

그리스와 터키의 반목은 국가를 넘어선, 문명의 충돌이다. 그 지역의 패권을 두고 기원전 5세기에는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영화 ‘300′)가 싸웠고, 1071년에는 비잔티움 제국과 셀주크튀르크(십자군전쟁)가 붙었다.

 

그러나 모든 충돌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1897년 그리스가 크레타섬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시작했을 때 오스만튀르크 군사들은 관광하는 기분이었다. 에게해의 아름다운 경관에 한눈이 팔린 병사들은 대포에 포탄을 넣는 것도 귀찮아했다. 가끔씩 건성으로 방아쇠만 당기다 보니 소리만 요란하고, 폭발은 없었다. 사망자는 극소수였다.

1930년대 케말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모습. 터키의 혁명가, 군사령관, 정치인, 작가, 터키 공화국의 국부. 1923년부터 1938년 별세 때까지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아랍어가 아닌 알파벳을 사용토록 한 언어 개혁을 포함, 터키를 근대적이며 세속적인(종교적 이슬람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산업 국가로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케말주의'로 불리며, 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첫손에 꼽힌다. /위키피디아

 

전쟁의 긴장감이 전혀 없었던 이유는, 그리스가 끌고 나간 군함 안에 변변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스만튀르크가 패배하면, 러시아가 지중해까지 진출할 것을 걱정한 주변 열강들이 그리스의 무기를 뺏었다.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튀르크를 응원하는 모순 속에서 전쟁은 아주 싱겁게 끝났다.

 

그리스 지역은 십자군전쟁 이후 줄곧 오스만튀르크의 지배 밑에 있었다. 그런데 오스만튀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그리스가 1919년 독립전쟁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기독교 형제국들의 도움을 받아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앙카라까지 진군했다. 하지만 케말 파샤가 이끄는 육군에 대패하여 퇴각했다.

 

그때 케말 파샤가 아주 큰 판을 짰다. 그리스를 혼내주기는커녕 에게해의 작은 섬들까지 전부 덤으로 줬다. 대신 그리스를 도왔던 주변국들을 압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키 내륙을 분할 점령했던 승전국들에 퇴각을 요구했다. 점령국들이 이를 받아들여 지금의 그리스와 터키의 영토가 확정됐다(1923년 로잔 조약).

 

전쟁에서 진 그리스가 에게해의 보석 같은 섬들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설이다. 터키에는 코앞의 그 섬들이 그림의 떡이다. 케말 파샤가 육지의 영토 회복을 위해 포기한 결과다. 경제학에서는 그것을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오늘은 99년 전 케말 파샤가 그리스에 대승을 거둔, 터키의 국경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