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33] 대통령과 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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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8.19 00:00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쿠데타 후 '제1 총통(1st Consul)'에 올랐던 나폴레옹,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물러난 뒤 총리와 대통령을 겸한 '총통'에 오른 히틀러. /위키피디아
미국에서는 국가원수나 회사 사장이나 ‘프레지던트’다. 오늘날 버지니아주에 있는 제임스타운에 1607년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들어섰을 때 주민자치단체의 대표를 프레지던트라고 부른 데서 시작된 직함이다. ‘회의장에 미리 나와 앉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뜻이 너무 겸손하다 보니 독립 전쟁의 영웅 워싱턴 장군을 프레지던트로 부르는 것이 큰 결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초대 대통령 취임식 때 공식 직함 뒤에 ‘각하’라는 말을 덧붙일 것인지가 큰 논쟁거리였다.
일본은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번역했다. 통령(統領)은 원래 높은 장수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1799년 나폴레옹 장군이 쿠데타 직후 스스로에게 붙인 새 직함(First Consul)을 ‘제1통령’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1858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을 때 느닷없이 프레지던트를 ‘대(大)통령’으로 번역했다. 미국의 통수권자는 유럽의 나폴레옹보다 더 높다는 뜻이다. 지독한 숭미(崇美)다.
한국이 일본의 영향을 받기 전에는 프레지던트를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고 불렀다. 중국말로 ‘보리시톈더’다. 중국은 나중에 그 말을 총통(總統)으로 고쳤는데, 한국에서는 총통이 다른 뜻을 가진다. 히틀러가 누렸던 ‘퓌러(Führer)’를 의미한다. 1934년 바이마르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했다. 평소 대통령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총리 히틀러는 자기가 대통령까지 겸하기로 하고 퓌러, 즉 ‘총리+대통령’직을 제안했다.
1934년 오늘 퓌러, 즉 총통직 신설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서 퓌러로 취임한 히틀러는 중앙은행 총재도 경제부장관을 겸직하도록 했다. 전쟁을 준비하는 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국가원수가 지지율만 믿으면 위험하다. 불행해질 수 있다. 결국 겸손이 정답이다. 조지 워싱턴은 취임식에서 프레지던트라는 공식 직함 이외에 어떤 수식어도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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