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屠는 尸와 者로 구성되었는데, 者는 소리부도 겸한다. 尸는 ‘주검’을 뜻하고 者는 煮(삶을 자)의 본래 글자로 짐승을 잡아 ‘삶다’는 뜻을 갖기 때문이다.
尸는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사람의 다리를 구부린 모습인데, 이를 두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모습이라거나 꼬부리고 누운 모습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주검’과 연계되는지 쉬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대 문헌에서는 尸가 동이족을 말하는 夷(오랑캐 이)와 같은 뜻으로 자주 쓰이는데 그 이유도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尸가 시체를 묻는 방식의 하나인 굽혀묻기(屈葬·굴장)를 형상화 한 것이라 생각한다.
굽혀묻기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의 돌무덤에서 자주 발견되는 매장 방식의 하나이며 그것은 시신을 태어날 때 태아의 모습으로 되돌림으로써 내세에서 다시 태어날 것을 기원하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굽혀묻기는 시베리아 지역의 돌무덤과 관계있으며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이후에야 일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원 지역을 살았던 중국인들에게 굽혀묻기는 매우 특이하게 여겨졌을 것이며, 그것이 尸와 夷가 같은 의미로 쓰였던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夷가 큰(大·대) 활(弓·궁)을 가진 민족을 뜻하여 활쏘기에 능했던 동방의 이민족을 지칭했던 것처럼 굽혀묻기라는 특이한 습속을 가진 민족을 尸로 지칭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尸가 굽혀묻기뿐 아니라 죽은 ‘시신’을 뜻하는 넓은 의미로 파생되자 尸에 死(죽을 사)를 더한 屍를 만들었다.
殺은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이에 관해서도 여러 해설이 있지만 짐승의 몸체에다 죽임을 상징하는 삐침 획(/)이 하나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는 털을 가진 짐승을 죽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였는데 이후 소전단계에 들면서 죽이는 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해 복(칠 복)이나 수(쇠창 수)가 더해졌으며 결국 수가 대표로 남아 지금의 殺이 되었다.
殺은 ‘죽이다’는 원래 뜻으로부터 분위기나 법칙을 ‘깨다’는 의미로 파생되었는데, ‘殺風景(살풍경)’은 중국어에서 ‘분위기를 깨다’는 뜻이다. 또 弑는 殺의 생략된 모습과 式(법 식)으로 구성되어, 죽임(殺) 중에서도 신하나 자식이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을 특별히 지칭할 때 쓰인다. 그것은 계급질서가 엄격하게 구축되었던 유가사회에서 계급적 질서(式)를 파괴한 죽임임을 뜻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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