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刀는 칼의 모습을 그렸다. 칼은 적을 찌르는 무기이자 물건을 자르고 약속부호를 새기던 도구이기도 했다.
刃은 칼(刀)에 ‘날’이 있는 쪽을 가리키는 부호(주)가 더해진 글자로, 忍(참을 인)은 칼날(刃)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心·심)을, 認(알 인)은 말(言·언)이 칼날(刃)처럼 마음 속(心)에 각인되는 것을 말한다. 初(처음 초)는 칼(刀)로 옷감(衣·의)을 마름질하는 모습으로부터 ‘처음’의 의미를, 制(마를 제)는 원래 칼(刀)로 나뭇가지(末)를 정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에 비해 則(법칙 칙)의 刀는 칼을 직접 지칭한다. 則은 원래 鼎(솥 정)과 刀로 이루어져 청동기물의 대표인 鼎과 무기의 대표인 刀를 만들 때 그 용도에 따라 엄격히 지켜져야 할 합금 비율을 말한 데서 ‘법칙’의 뜻이 생겼고, 이후 鼎이 貝(조개 패)로 바뀌어 지금처럼 되었다.
그런가 하면 別(나눌 별)은 원래 &(骨의 원래글자)와 刀로 이루어져 칼(刀)로 뼈(&)를 발라내는 모습으로부터 구별의 의미를 그려냈다. 그리고 列(벌일 열)은 불로 지져 점을 칠 때 잘 갈라질 수 있도록 뼈((대,알)·알)에다 칼(刀)로 나란히 줄을 지어 홈을 파던 모습을 형상했는데, 이로부터 ‘행렬’의 의미가 생겼다. 이렇게 가공된 뼈를 거북점처럼 불(火·화)로 지지면 쩍쩍하면서 세차게(烈·열) 갈라지게 되고, 그 모양에 근거해 길흉을 점쳤다.
또 券(문서 권)은 소전체에서 두 손(공·공)으로 자세히 분별해가며(변·변) 칼로 새기는 모습을, 契(맺을 계)는 두 손(공)으로 칼로 새긴 부호(봉·봉)를, 刊(책 펴낼 간)은 나무(干·간)에 칼로 새겨 판각하던 모습을 그린 글자들이다.
하지만 劇(심할 극)과 刑(형벌 형) 등은 刀와 관련이 없던 글자들이다. 劇의 刀는 원래 力(힘 력)으로 되어, 호랑이(호·호)와 멧돼지(豕·시)가 죽을 힘(力)을 다해 싸우는 모습에서 ‘극렬’의 의미를 그려냈다. 또 刑은 사람(人·인)이 네모꼴의 감옥(井·정)에 갇힌 모습에서 형벌의 의미를 그렸으나, 人이 刀로 잘못 변해 지금처럼 되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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